Kwon Sojin  -   벌새를 보았다

Feb. 6, 2025 - Feb. 28, 2025

눈이 막 녹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풍경에 주인공의 실루엣만이 남아있다. 우리의 발 아래 있어야 하는 마루 안에 찢어진 벽지가 보인다. 작품마다 불쑥 벌새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전시된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을 방해한다. 자세히 본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의 ‘관찰’이라는 작품 제목의 단어가 무색하게 관찰의 대상은 그 흔적만 남아있거나 다른 곳에서 오려내 붙인 듯한 잔상이 남아있다. 보인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재현의 범주를 맴도는 표현들이다.
주인공이 사라져 버린 ‘부재’의 세계를 통해 존재의 진정성에 대해 질문하는 권소진 작가(b.1991)의 이번 개인전은 어릴 적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그는 화단에서 꽃의 꿀을 빨고 있는 벌새를 보자마자 집으로 뛰어가 벌새를 봤다며 소리쳤다. 20여 년이 넘게 그에게 특별했던 이 기억과 믿음은 최근 한국에 벌새가 없다는 사실과 ‘벌새인 척하는 나방’이라는 영상을 보며 흔들리게 되었다. 이 경험을 기반으로 작가는 생각했다. 상상 속 벌새를 실제로 보았다는 것이 중요하여 진실이라 믿었던 어린 시절처럼,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것은 개인의 가치에 따라 상대적인 것은 아닐까.
진정한 것과 거짓된 것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작가의 붓은 가위가 되어 정교하게 쌓아 올려 재현된 현실을 오려낸다. 계속해서 재현할 대상을 프린트하고, 오려내고, 붙여보며 재조합하여 현실을 거듭 재현하고 비워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재(不在)’의 세계는 ‘재(在)’를 상기시키는 아이러니한 세계를 형성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캔버스 안에 머물러 있었던 세계를 전시를 보는 이 공간에 침투시켜 확장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마룻바닥처럼 보이는 캔버스는 나무 무늬 벽지처럼 찢겨 나가고, 그 안에는 또 다른 차원 혹은 벽지처럼 보이는 표현을 통해 실제 현실과 작품, 기억과 상상의 층위를 보다 자유롭게 넘나든다. 또한 바닥 무늬와 연계된 작은 창문처럼 보이는 신작 <Humming>은 눈이 녹으면 곧 사라질 찰나의 글과 그림을 묘사하며 전시의 출발점이 되는 작가의 불확실한 어린 시절 기억으로 안내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작업 방식은 ‘재현’이라는 개념에 대한 작가의 오랜 탐구를 반영한다. 오랜 시간 동안 회화는 ‘재현’에 상당 부분 빚을 져왔다. 재현을 의미하는 단어 ‘representation’, 즉 ‘다시(re)’ ‘드러낸다(present)’라는 말에는 항상 원래의 대상, 원본이 전제되어 있다. 재현은 원본과의 일치를 추구하지만, 작가에게 있어 그 일치의 가능성은 불완전하고 상대적이다. 작가는 작품의 배경을 세밀하게 재현하고 서사적인 제목을 붙여 사건의 흐름을 암시하지만 결론적으로 재현의 대상이 결여되어 있고, 그 존재는 전시장에서 나타나고 사라진다. 가령 <관찰일지> 연작에서 새가 사라진 부분들은 또 다른 화면에서 나타나거나 벌새라고 착각한 나방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관찰과 상상이 뒤섞인 불확실한 기억들은 그것들이 현실에 등장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전시장 내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그림으로 보는가.” 라는 작가의 질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겠다. 작품 <그림자 도둑>에서 사라져 버린 주인공은 그를 지칭하기도 하며, 오려낸 조각을 훔쳐간 또 다른 이를 암시하기도 한다. 작품은 그려진 것과 복제된 것(프린트), 그리고 이 모든 레이어를 뚫어내는 하얀 구멍으로 이루어진다. 구석에 작은 벌새를 찾아낸다면,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림이 아닌 벌새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벌새일까? 관람객은 상상하는 것과 재현된 그림, 실제 사물과 나의 기억, 어떤 것에 진정한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품을 읽어내게 되며, 작가가 던진 질문에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것과 거짓말을 알아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때로는 거짓말을 앞세우는 것, 혹은 진정한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막연한 믿음 이전에 그것이 사라져 버렸을 때 비로소 마주하는 진정한 것들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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