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김호득 개인전 《-빼고 또 빼고-》는 자연이 지닌 근원적인 기운을 수묵의 선과 붓질이라는 신체적 언어로 붙잡아온 작가가, 수많은 필획을 쌓아온 기나긴 수행의 여정을 뒤로하고 본질을 남기기 위해 다시 한번 스스로를 비워내는 자리다.
작품은 형상과 그것이 그려지지 않은 공간으로 크게 구성된다. 동양화를 서양화와 구분 짓는 이 빈 공간은 결코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상태가 아니다. 마치 악기 소리 사이의 침묵이 다음 음의 여운을 증폭시키고 음악 전체의 깊이를 결정하듯, 동양화의 점, 선, 면 역시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화면 전체가 달라지는 우주적 질서를 이룬다. 따라서 화면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조형 요소들이 맺는 관계는 곧 동양화가 지닌 깊은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백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내용을 함축하는 근원적 바탕이 된다. 대상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절제의 미학을 표현하고 암시를 건네는 공간이며, 단순한 공간 분할을 넘어 정신을 담아 기운을 전달하는 장(場)이다. 김호득은 바로 이 기운이 작용하는 여백을 탁월하게 운용해 온 작가다. 그는 산, 계곡, 물, 폭포 등 자연에서 받은 인상을 그리되, 단지 외형을 복제하는 데 사로잡히지 않는다. 대신 자연물이 퍼드덕거리는 떨림이나 기미를 낚아채어, 자연이 품은 에너지와 생동감을 수묵의 선과 굵직한 붓질로 화폭 위에 끌어낸다.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는 물줄기의 굉음, 부서지는 물보라, 그로 인해 움찔하는 신체의 감각과 주변 공기의 떨림까지—이 모든 것은 지필묵의 즉흥성과 일필휘지의 속도감을 현대적 공간 설치 미술로 확장시키는,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조형 언어가 된다. 다시 말해 앞서 언급한 점, 선, 면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우주적 질서는 추상적 개념에 그치지 않고, 김호득의 손끝에서 자연의 기운을 담은 구체적 떨림으로, 그리고 그 떨림을 마주한 관객 각자의 감상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여백으로 이어진다.
《-빼고 또 빼고-》라는 제목은 이러한 여백의 운용이 이번 전시에서 한층 더 극단으로 나아갔음을 예고한다. 형상을 점과 선이라는 최소한의 조형 요소로 응축해 온 것은 김호득이 오랜 시간 지속해 온 작업 방식이지만, 이번 전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점과 선마저 개념적으로 다시 덜어내는 시도에 가깝다. 이미 충분히 절제된 화면에서 무엇을 더 뺄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남은 최소한의 흔적만으로 폭포의 낙차와 물보라의 기세는 여전히 전달되며, 형상을 뺄수록 오히려 기운은 더 선명해진다는 이번 전시의 역설을 보여준다.
이처럼 점과 선만으로 응축된 여백의 기운은 이번 전시에서 실제 공간으로까지 확장된다. 3층 전시장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튀긴 붓질이 벽면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이 행위를 두고 붓을 "튀겨 제낀다"고 표현하는데, 그 거침없는 손짓 아래 광목의 여백은 마치 아득한 우주 공간처럼 펼쳐지고, 그 위에 튀어 오른 먹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혜성처럼 화면 위에 궤적을 남긴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공간의 여백까지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이 설치 작품은, ‘폭포’, ‘계곡’ 라는 작품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물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며 압도적인 우주를 형성한다. 이는 고도의 수양을 거친 작가의 직관이 창출해 낸, 여백이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김호득이 수십 년의 수행 끝에 열어낸 것은 완결된 형상이 아니라, 보는 이의 상상으로 채워질 여백 그 자체다. 그가 비워낸 이 여백 앞에서, 상상력이 자유로이 해방되는 순간과 우주의 무한한 공간 속을 노니는 깊은 감상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